○ 봄 정월에 이단(李端)을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 ○ 동여진의 귀덕장군(歸德將軍) 거려울(居閭鬱) 등이 왔다. ○ 2월에 거란이 태부(太傅) 이지순(李知順)을 보내어 예물을 가지고 왔다. ○ 순덕(順德)에 성을 쌓았다. ○ 3월에 최황(崔貺)등 11명과 명경 1명에게 급제를 주었다. ○ 여름 4월에 지채문(智蔡文)을 우복야(右僕射)로 삼았다. ○ 윤 5월에 동서 여진의 추장이 각기 부락의 자제들을 거느리고 와서 말과 활ㆍ쇠뇌를 바쳤다. ○ 거란이 어원판관(御院判官) 야율골타(耶律骨打)를 보내와서, 길을 빌려 장차 동북 여진으로 가기를 청하니 허락하지 않았다. ○ 6월에 이단(李端)을 지중추사(知中樞事)로, 황보유의(皇甫兪義)를 어사대부로 삼았다. ○ 가을 7월에 거란이 감문위대장군(監門衛大將軍) 왕문간(王文簡)을 보내와서 생신을 하례하였다. ○ 정미일에 큰 비가 와서 서울의 민가가 물에 떠내려가고 무너진 것이 매우 많았다. ○ 8월에 송의 광남(廣南) 사람 이문통(李文通)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 9월 기유일에 서경에 큰 물이 져서 민가 80여 호가 물에 떠내려가고 무너졌다. ○ 갑자일에 해주(海州) 신광사(神光寺)에 행차하였다. ○ 겨울 10월 초하루 계유일에 일식이 있었다. ○ 임오일에 해주(海州)에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