鳳 山 智 氏
봉 산 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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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지씨 경주정씨 봉산지씨 충주어씨 모든 정씨 여러분 같은 핏줄입니다. (봉산지씨의 유래)
지준환  2007-04-27 21:34:53, 조회 : 8,278, 추천 : 1487

저는 평창파입니다.

봉주지씨와 충주지씨 모두 정지백호와 지충강의 후손이 틀림없겠으나 확인할길이 없다.
지백호와 지충강의 후손라고 하는 충주지씨와 봉주지씨, 지백호와 신라의 개국공신 지충강와의 혈연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문헌을 보면 정지백호와 지충강의 40대손 봉산지씨 지채문이라고 합니다. 또 충주지씨는 42대손이라고 한다.

충주지씨 지경와 봉주지씨 지채문는 가까운 친족이라고 합니다.  

어떤 문헌은 가계도 보면  6대조(지천?)부터 갈려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 보면 충주지씨, 봉산지씨, 경주정씨은 같은 핏줄입니다.  

충주지씨, 봉주지씨 경주정씨은 같은 핏줄입니까

정확히 말씀 해주세요  

봉산지씨 유래

경주정씨 시조 지백호와 신라의 개국공신 지충강입니다. 그러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고 정확한 고증할 문헌이 실전되어 정확히 상고 할수 없다, 또 충주지씨 시조 지경와의 혈연관계 고증할 문헌이 실전되어 정확히 상고할수 없다.
지백호와 지충강의 후손 중 계속 지씨를 사용한 후손이 있었음이 밝혀진다. 여기서 말하는 후손들은 다른 성씨를 받지 않고 신라조정과 틈이 생겨 서라벌 즉 신라를 떠나 북쪽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은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더러 지씨 성씨로 보이는 이름이 나오기는 하나 대개 승(僧)이거나 성(姓)이 아닌 이름일 가능성이 높은 것들이다.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지씨 성을 발견할 수 없다. 신라에 지씨 성이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은 의문이다. 신라에서는 당시 왕가(王家)와의 결혼이 대개 진골(眞骨)이라는 점으로 볼 때 자주 나오는 지씨 성이 지백호와 지충강의 후손임이 틀림없겠으나 확인(確認)할 길은 없으며 또 충주지씨도 정지백호와 지충강의 후손임이 틀림없겠으나 봉주지씨와 충주지씨 모두 정지백호와 지충강의 후손이 틀림없겠으나 확인할길이 없다.
봉산 지씨의 시조 지채문(智蔡文)은 고려 때의 명장인데, 그의 선계에 대해서는 고증할 문헌이 실전되어 정확히 상고 할 수 없다. 그는 1010년(고려 현종 원년) 거란군이 내침했을 때 많은 전공을 세웠고, 또 왕의 피난길을 호종하여 신변의 위기를 막아 난이 평정된 후 공으로 토지를 하사받고 무관으로서 우상시(右常侍)를 겸직했다. 후에 상장군(上將軍)·좌복야(左僕射)를 지냈고 덕종이 즉위하자 일등공신에 추록되었으므로,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관향을 봉산(鳳山 : 봉주의 별호)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조선씨족통보」 에는 지씨의 본관을 13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관향은 봉주 단본으로 전한다. 시조 채문의 증손 녹연(祿延)은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음보로 벼슬에 올라 동북면 병마판관(兵馬判官)을 지냈고 1104년(숙종 9) 여진 정벌에 공을 세워 전중사어사(殿中寺御史)가 되었으며, 예종 때 내시지후를 거쳐 경상도 안무사(按撫事)·동북면 병마사(兵馬使) 등을 역임한 후 1125년(인조 3) 동지중추밀원사(同知中樞密院事)에 이르렀다. 그리고 정묘호란 때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한 득남(得男)은 선천 부사(宣川府使) 기 현의 별장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능한산성에 들어간 뒤 전세록·김여간·계숭로·임여택 등과 함께 선천의 월봉에서 천 여명의 의병을 모아 적을 대파하였으므로 이름이 후세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충주지씨 경주정씨 봉산지씨 충주어씨 모든 정씨 여러분 같은 핏줄입니다.

경주정씨시조는 지백호(智伯虎). 신라초의 진지촌장(珍支村長)이었다. 또 지백호의 후손 지충강도 경주정씨입니다. 왕으로 옹립한 공으로 신라개국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고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졌다. 경주정씨의 시조가 된 것은 신라 유리왕 때 시조의 5세손 동충이 鄭氏로 사성(賜姓)된데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경주정씨는 모두가 지백호를 시조로 하여 기세(起世)하고 있다. 그 뒤 후손들은 연일. 동래.온양. 초계. 하동. 진양. 진주 충주지씨,봉주지씨,충주어씨 등 120여 성씨로 分貫된다.


[鄭,智,池]족보의 세계를 보시면 자세히 알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볼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충주지씨의 시조는 지경와 봉주지씨의 지채문가 아니라 그 이전에 지백호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글을 봤습니다.. 지경와 지채문는 지백호라는 사람의 후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경선생 고려때 사신으로 와 이곳에 눌러 살게 됬지만 봉주지씨 지채문는 고려의 명장 대대호 살게 됬지만.... 신라를 만들었던 육촌중 한사람이었던 지백호... 신라개국공신 8학사 지충강 등을 보면 신라가 건국되는데 큰 영향력이 됬던거 같습니다... [그 후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지씨가 경주 정씨로 성을 하사받았고 곳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다. 하지만 524년이 지난 무열왕 시대에도 계속 지백호라 호칭된 것으로 미루어 그의 후손 중 계속 지씨를 사용한 후손이 있었음이 밝혀진다.] ... 여기서 말하는 후손들은 다른 성씨를 받지 않고 신라조정과 틈이 생겨 서라벌 즉 신라를 떠나 북쪽으로 올라가 지경할아버지가 태어난 중원홍농에 자리를 잡은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신라에 대대로 살아는 지채문의 선조는 자리를 접은것 같다. 여러 자료를 읽고 써 보았지만... 이것을 정확히 증명할 역사 자료가 없어 신빙이 없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라시대의 문물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학술조사단에 의해 숭덕전 서장에서 발굴된 내용에 지백호라는 사람등 지씨에 대해 나와있는걸 볼때 앞으로 신라시대에 대해 많은 연구자료가 나오고 발굴되면 더욱 자세히 밝혀질것 같다.




지덕환
경주정씨에서 갈려져 나온 성씨 충주지씨(지경) 및 봉산지씨(봉주지씨, 지채문)입니다.

분명히 같은 핏줄일걸 같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 알고 있겠죠
2007-04-27
21: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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