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파의 시조이신 16세 충보(忠輔)분의 첫째 아드님 규(矢見)자 분은 2남2녀를 두셨으나 후손을 두지 못하셨고, 둘째 아드님 구(矢巨)자분은 평창에 후손을 두신 분이시고, 셋째 아드님 내(矢匀)자분은 충주에 후손을 두신 분이다.
충주 후손들은 17세 내자분의 묘소와 아드님이신 사영(士泳)분의 묘소가 실전되어 400여년이 되도록 찾지 못하고 수소문하던 중 평창에 계시는 동섭씨의 도움으로 평창군 평창읍 천동리 사당 뒤편에서 찾게 되어서, 2003년 4월에 후손들이 마음을 모아 비석과 상석을 세워 복원하여 후손들이 떳떳이 있음을 표시하였다.
묘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평창의 큰집 후손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신 고마움에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이렇게 어렵게 뿌리를 찾고 실전된 선조 묘를 찾음에 충주 후손들은 더없이 영광이 아닐수 없으며, 앞으로 충주 후손들은 더욱 번창하고 훌륭한 인물이 나타나리라 기대해 봅니다.